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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오동도는 동백꽃으로 유명한 섬이었다. 겨울의 끝자락,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지만 동백꽃은 이미 붉게 피어 있었다. 이 글은 오동도의 동백꽃 산책길을 걸으며 만난 여섯 가지 감각적 순간을 담았다. 섬으로 향하는 방파제, 동백꽃이 흩날리는 산책로, 나무 아래 떨어진 붉은 꽃잎, 등대에서 바라본 바다, 동백터널의 그림자, 그리고 그 길이 남긴 여운. 오동도의 동백꽃 산책은 단순한 풍경 구경이 아니라 계절과 마음이 만나는 여행이었다.
섬으로 향하는 방파제
오동도로 가기 위해 방파제를 걸었다. 바다 위에 길이 놓여 있었고,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흩날렸고, 파도는 방파제 아래서 부서졌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바다 냄새를 맡았다. 방파제 끝에는 오동도의 초록 숲과 붉은 꽃이 보였다. 저 멀리 등대도 보였다. 방파제는 단순한 연결 통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섬으로 들어가는 의식 같은 길이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풍경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바람과 파도 소리가 여행의 서곡처럼 들렸다.
동백꽃이 흩날리는 산책로
섬에 들어서자 동백꽃 산책로가 이어졌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비췄고, 그 빛 아래 동백꽃이 피어 있었다. 어떤 꽃은 나무에 매달려 있었고, 어떤 꽃은 땅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바람이 불자 꽃잎이 흩날렸다. 그 모습은 눈송이처럼, 혹은 작은 불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그 길 위에서 사진을 찍고, 꽃을 바라보고, 잠시 멈춰 서 있었다. 동백꽃 산책로는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머무는 길이었다. 나는 그 붉은 색 속에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그 순간의 풍경은 사진보다 마음에 더 깊게 남았다.
나무 아래 떨어진 붉은 꽃잎
동백꽃은 피어 있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떨어진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나무 아래에는 붉은 꽃잎이 가득 깔려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붉은 융단 같았다. 나는 그 꽃잎 위에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꽃잎은 조용히 바람에 흔들렸다. 떨어진 꽃잎에는 어떤 애잔함이 있었다. 짧게 피고, 금세 떨어지는 동백꽃의 생이 담긴 듯했다. 나는 꽃잎을 한 장 주워 손바닥에 올렸다. 그 작은 꽃잎 안에는 짧지만 뜨거운 계절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나무 아래의 꽃잎은 자연의 시간과 순환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등대에서 바라본 바다
섬 끝자락에 등대가 있었다. 나는 계단을 올라 등대에 섰다. 등대 위에서는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저 멀리 배들이 떠 있었고, 수평선 위로 햇살이 반짝였다. 바람은 조금 더 세차게 불었다. 등대는 바다와 섬과 하늘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등대 난간에 기대어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봤다. 파도의 리듬, 바람의 소리, 햇빛의 반짝임.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등대 위의 시간은 빠르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마음이 고요해졌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등대는 늘 그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동백터널의 그림자
섬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동백터널이 나타났다. 나무들이 아치형으로 길을 감싸고 있었고, 그 아래로 빛이 드문드문 내려왔다. 나는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동백터널 안에는 그림자가 있었고, 그 그림자 사이로 붉은 빛이 스며들었다. 그 길은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았다. 사람들은 조용히 걸었고, 아이들은 뛰어다녔다. 나는 그 터널 안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동백터널은 단순한 나무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절과 계절 사이, 시간과 시간 사이를 잇는 길 같았다. 그 안에는 이야기와 여운이 담겨 있었다.
산책이 남긴 여운
섬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방파제로 돌아왔다. 바다는 여전히 출렁이고 있었고, 동백꽃은 여전히 피어 있었다. 나는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오동도의 동백꽃 산책은 단순히 풍경을 걷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절의 끝자락에서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었다. 붉은 꽃, 파도 소리, 바람, 햇살, 등대.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기억이 되었다. 나는 그 기억을 마음에 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오동도의 붉은 꽃길이 남아 있었다. 여수 오동도는 오늘도 그 자리에 서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